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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 산다. 단순히 퇴근 또는 주말을 기다리는 지루한 내 하루의 반복을 넘어, 모두의 일상을 품고 반복되는 시간. 바로 계절이다. 늘 새로워져야 할 것 같고, 때로는 매번 새롭게 어렵지만 어떤 안정적인 반복 속에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나아지기도 한다. 밀양에는 5월부터 6월 초까지 양귀비가 핀다.

자연히 피었다 진다기보다는 누군가 심고 거두는 듯하지만, 강변이 양귀비로 붉게 물드는 풍경은 아름답다. 처음 그 풍경을 만난 건, 자주 강변을 달리던 작년 5월 초였다. 동그랗게 삼문동 둘레를 감아 흐르는 밀양강을 따라 뛰면 딱 5km라, 매일 미묘하게 바뀌는 해의 길이나 물빛을 보며 뛰기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붉게 물든 꽃밭을 마주했다. 쉬지 않고 뛰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강렬한 풍경이었다.

빨간색이 주는 강한 인상과 다르게, 양귀비는 바람이 살짝 불어도 톡 떨어질 것 같은 얇은 꽃잎을 지니고 있다. 그 연약한 꽃잎의 양귀비가 가득 피어 있는 강변 한편의 양귀비밭은 5월부터 시작하여 6월이 될 때까지도 붉다. 작년 5월 그 꽃밭을 처음 만난 날 이후로, 다시 또다시 꽃밭에 갔다. 서울에서 여행을 온 E와 맑은 날 함께 가서 보고, M을 밀양역으로 배웅해 주러 가던 길에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양귀비를 보여주고 싶어 급히 뛰어가 풍경을 마음에 꼭꼭 담았다. 친구들은 떠나고, 계절이 지나고, 양귀비는 자취를 감췄고 그렇게 나는 바쁘게 일상을 또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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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올해도 5월은 돌아왔고 누군가 밀양강에 양귀비가 피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작년의 순간과 얼굴들이 겹쳤다. 올해도 그 풍경을 보러 가야지. 작년에 그 풍경을 함께 나누지 못했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올해는 G와 그리고 또 혼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양귀비밭에 가서 앉아 있었다.

사진으로만 풍경을 담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땅에 떨어진 붉은 꽃잎을 줍고, 몇 개는 따서 말렸다. 붉은 꽃잎을 종이에 눌러 말리니 며칠 뒤 와인색이 되었다. 투명한 와인빛 꽃잎에 어울리도록 종이를 크기에 맞게 오리고, 덧댈 종이를 정하고, 어울리는 색의 실을 골라 바느질했다. 말린 꽃잎을 몇 개는 액자에 끼워 책장 위에 잘 보이게 두었다. 나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한 번 보고 못 볼, 스쳐 가는 순간보다는 보고 또 볼 수 있는 것들이 좋다. 시간과 장면을 겹쳐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두터워지는 것이 좋아서이다. 나는 압화로 제철을, 좋았던 시간을 말리고 엮어, 더 오래 누리고 바라본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돌아와, 책장 위의 양귀비 꽃잎 액자를 본다. 내년 5월에도 아마, 밀양강 변에는 양귀비가 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다른 모습으로 그곳에 갈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아마도 작년, 그리고 올해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덜어지고,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어딘가에 머무르며 계속해 산다는 것은, 좋아하는 풍경을 기꺼이 기다리고 당연하게 맞이하는 일상을 선물해 준다. 감사하게도.

꽃양귀비가 핀 삼문동 밀양강변

꽃양귀비가 핀 삼문동 밀양강변